본문 바로가기
소개

창립선언문

by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 2021. 12. 10.

예산감시 네트워크 창립 선언문

시민은 고달프고, 지자체의 잔고는 쌓인다

시민은 고달프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헐거워지고 있다. 2020년 2~4분기 근로소득은 2019년 동기 대비 2.9% 감소하였고, 사업소득은 1.2% 감소하였다. 소득분위별로 소득감소율을 살펴보면 1분위의 경우 17.1%가 감소하였고, 2분위의 경우 5.6%가 감소하였다(한국은행, 2021). 불평등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또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009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인 207.7%로 2019년 보다 12.5%나 상승했다(OECD). 시민들은 세금과 공적보험료를 내고 한 푼도 쓰지 않고 2년을 모아야 겨우 빚을 갚을 수 있다.

지자체의 살림살이는 더욱 두터워졌다. 2020년 결산에 따른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은 총 32.1조원 수준이다(국회예산정책처, 2021). 지자체의 세입 예산은 예상보다 많았고,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쓰지 않은 돈이 많았다. 한 해 동안 예산을 유연하게 사용하지 못한 셈이다. 또한 각종 명목으로 마련한 기금의 경우 2020년 22조를 썼지만, 37.8조가 남았다(지방재정365). 이런 상황에서 지방재정분권화로 지자체의 세입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지방소비세가 확충되고 지역소멸대응기금이 신설되는 등 지방재정을 늘리는 제도가 도입된다. 지방재정분권은 시민들이 재정운용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길로 이어지지 못하고 지자체 잔고를 늘리는데 그친다.

지자체는 예산을 허투루 쓰기도 한다. 광주광역시는 31억원을 들여 2020년 고속도로 톨게이트위에 무등산 조형물을 설치했다. 2019년 72억원을 투입해 무주군은 향로산 정상에 태권브이 동상을 설치하려다 시민들의 비판에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경남 함양군은 987억원 짜리 ‘변강쇠 옹녀 테마공원’을 만들려 하다가 비판이 심해지자 139억원으로 사업비를 줄였다. 줄여도 139억원 사업을 추진하는 셈이다. 경남 하동군은 1,650억원을 써 지리산 산악열차를 만들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으며, 남원시도 1,783억원을 들여 지리산 산악열차를 만들겠다고 한다.

케이블카, 출렁다리, 산악열차, 모노레일 등 유행처럼 각종 개발사업이 전국 지자체에서 주요사업으로 번진다. 대부분 부풀려진 수익추계를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사후 관리 비용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그릇된 예산 낭비의 사례다. 통제 받지 않는 괴물들이 부리는 광란의 행패를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정작 써야할 예산을 쓰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영향 뒤에는 기후위기라는, 더 오래 전부터 시작된 장기 비상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2020년 50여일 간의 장마로 전국의 2,000만평의 농경지가 침수되었다. 농업재해보험 지급액은 2015년 529억원에서 2020년 1조 193억원으로 증가했다(농축산식품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가중된 만큼 수 많은 지자체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예산은 편성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전에도 기후변화 대응 명목으로 편성된 전기자동차 보급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주택, 공장 등 에너지효율개선 사업엔 인색하다. 주민 동의 없는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전환의 길은 뒤틀리고 있다. 온갖 좋은 말로 포장된 청사진은 넘쳐나지만, 변화를 이끌어낼 예산 편성이 뒤따르지 않는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관성적 예산 편성의 모터가 매연을 내뿜고 있다.

예산감시의 두 축, 권력감시와 전환

예산감시 전국네트워크는 예산감시의 의미를 다시 짚어 보고자 한다. 예산감시는 권력 감시이다. 지자체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각종 계약 발주에서 자신들의 일가친척에게 수의계약으로 특혜를 주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난다. 돈의 흐름은 기득권의 이권챙기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민의 필요가 아니라, 지방 기득권의 이권을 채우는 예산 집행을 뿌리채 뽑아야 한다. 동시에 예산감시는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전환의 실질적 기반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라는 문명적 위기, 이로 인해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혐오와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환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환 정책은 예산을 통해서 실체화 한다. 권력감시와 전환이라는 예산감시의 두 축을 견고하게 세워야 할 때다.

그래서 다시 지역의 시민들이 뭉쳐야 한다. 비판적 시민사회 또한 중앙정부 감시 중심이다. 지역을 감시하는 눈, 일 하는 손과 발은 한 없이 줄었다. 시민사회는 어느 덧 자치단체의 보조금 사업자가 되었거나, 기득권의 조력자로 포섭되었다. 예산의 흐름을 쫓다보면, 우리 편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만큼 비판적 시민사회의 세력은 축소되고 역량은 감소되었다. 특히 서울 중심성이 강화되는 사회의 큰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서울로 떠나고 지역의 시민사회의 비판적 역량 또한 왜소해졌다. 비판적 감시 기능을 위임 받아 마땅한 지역의 정치인들은 이미 지역의 기득권 세력이 된 고인물이며, 위임 받은 권한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데 남용하고 있다. 거대 양당 중심의 기득권 정치 연합은 지역에서는 아무런 차이 없이 그저 권력과 이권의 모리배들로 살아가고, 소수정당들은 여전히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정당만 바라보기에는 시민들에게 여유가 없다.

먼저 나서, 동료 시민을 기다리며

예산감시 전국네트워크는 비판과 감시의 역량이 줄어든 혹한의 상황에서 먼저 겨울나기를 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체다. 각 지역에서 예산감시를 하고 있거나, 해보려는 개인과 단체들이 모인 수평적 연합체이다. 전국네트워크의 창립과 활동은 먼저 나선 시민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권력과 예산을 감시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문틈을 열어두려는 시도다. 막힌 문을 한 번에 열지는 못 할 수 있지만 그 거대한 기득권의 철문 한 틈을 비집고 버텨, 다음 시민들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데 합류할 수 있도록 문잡이 역할을 하고자 한다.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잠자코 있기엔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없는 동료 시민으로서 먼저 나서는 것이다.

앞으로 예산감시 전국네트워크는 각 지역에서 예산감시를 해나갈 것이다. 동네는 동네사람이 감시하고 바꿔나간다는 원칙을 가지고 느리지만 우직하고 독하게 문틈을 비집고 서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지역에서 예산을 보고, 감시하는 법을 함께 학습하고 시민들이 모여 예산의 오남용을 분석하고 기득권을 견제할 것이다. 단순히 예산 집행의 현황을 집계하는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예산서 등의 자료를 하나씩 훑어가며 쓰지 않은 돈, 잘못 쓴 돈 하나하나를 검토해 갈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이 쓰이도록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동시에 전국네트워크는 각 지역의 활동을 지원할 것이다. 예산감시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한계와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도록 때로는 생각을 모으고, 때로는 지지를 모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산감시 활동의 역량이 지역에 쌓이도록 각 지역이 서로 연합해 공통의 과제를 발굴하고 협력하면서 전국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먼저 나선 시민들이 만들어 내는 이런 변화가 앞으로 합류할 시민들을 초대하는 길이 될 것이다.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는?  (0) 2023.04.23

댓글